본문 바로가기
물건 정리

포카리스웨트 물병 - 출국 직전에 버린 이유

by 미니멀 요정 2022. 12. 22.
반응형

미니멀 라이프

물병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자진해서 미니멀리스트가 된 건 아니지만,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런 종류의 물건이야말로 빨리 정리해야 할 물건이 아닐까 싶다. 하나쯤 있으면 좋지만, 내 경우에는 너무 이런 물병이나 텀블러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실 물병을 열어서 그 안에 양말을 수납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캐리어를 정리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기왕 물건을 정리하는 김에 컵 하나, 텀블러 두 개만 남기고 싹다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거의 열 개 가량 되는 컵들을 버렸는데, 그 중에 하필이면 포카리 스웨트 물병이 제일 인상이 깊었다. 다른 물병들이야 예쁘니까 샀고, 멋있으니까 샀고, 세련되어 보이니까 샀다. 이벤트 때문에 받은 물병도 있고, 쓴 적도 없는데 깨져 있어서 어차피 못 쓸 물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이 물병은 꽤나 오래 쓴 편이었다.

포카리 스웨트 물병

버려야 했던 이유

꽤나 오래 써왔던 물병이라 버리기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뭔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도 아니고 해서 마지막까지도 버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어차피 내가 포카리스웨트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이런 이온음료보다 몬스터나 제로코크를 훨씬 좋아했기 때문에 굳이 가지고 있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포카리스웨트를 딱히 싫어했다는 건 아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수는 아니었다. 만약 몬스터 물병이었다면 지금까지 안 버리고 잘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오래 써서 안쪽에 얼룩이 생겼는데 소금물이나 미온수로 씻어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물건을 버려야 할 때마다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가볍게 살아야 하니까 물건을 정리하겠다 마음을 먹어도, 버릴 이유가 마땅히 없다면 버리지 않는다. 당장 내일이라도 또 쓸 물건 같으면 버리지 않는다. 이 물병의 경우에는 이미 나한테 다른 대체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버려도 되는 물건으로 분류되었다.

해외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너무 많은 것들을 손에 쥐고 있다.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 이렇게 살고 있으니 봐줘요'하는 것도 아니고, 없어보이고 싶거나 가난해보이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필요없는 물건에 대한 소유를 포기하면서 공간적으로는 훨씬 넓게 살고 있다.

근 1년 동안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고 있는데, 체감상으로는 침대 두 개 분량의 공간을 더 확보하고 사는 것 같다. 필요 이상으로 물건 가지지 않기, 쓸데없는 지출 줄이기를 통해서 오히려 금전적으로는 더 풍요로워졌고, 정말로 내 인생에 꼭 필요한 물건은 무엇인지 앞으로 매일매일 쓰게 되는 물건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포카리스웨트 물병

버리고 나서 무엇을 얻었나

나는 포카리스웨트 물병에 대한 소유를 포기하는 대신에 친구가 선물로 준 오마하 기념품과 네브레스카 기념품을 챙겨왔다. 각각 텀블러와 물병인데 1년 내내 잘 쓰고 있다. 1년 동안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살면서 다른 예쁜 컵을 보기도 했지만, 친구가 선물해준 컵이 있어서 굳이 새 컵을 사진 않았다. 그리고 컵과 텀블러를 합쳐서 세 개만 가지고 있어서 더 신경써서 관리하게 된다.

혹시 몰라 더 자주 설거지를 하고, 가끔 친구가 생각날 때 메시지를 보낸다. 정말 딱 친구가 선물로 준 컵만 가지고 있어서 더 자주 생각이 난다. 시차가 9시간이나 나서 타이밍 맞추기가 어렵긴 하지만.

가볍게 살자고 결심한 순간부터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초점을 더 맞춰 생각하게 된다. 그냥 나 혼자 필요해서 샀던 물건보다는 친구가 준 물건, 친구한테 받은 선물 위주로 남기게 된다. 최소한의 물건만 남기게 될 거라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물건을 남기는 게 더 후련할 것 같아서다.

 

도대체 어디서 얻은 물병이었을까

친구가 준 물병은 절대 아닌 것 같고, 이벤트로 받았던 기억은 없다. 아마 엄마한테 받은 게 아닐까. 글을 쓸 때에는 엄마라고 쓰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른이 되어서 제일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존대하는 호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묘하게 거리가 멀어지게 느껴지는 단어라고 할까. 만약 내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면 더 살갑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어렸을 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라고 불러볼걸, 살갑게 대해볼걸.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님을 용서할 준비가 되질 않았다. 부모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 해외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도 사실이니까.

만약 엄마한테 받은 물건이었다면, 오히려 버리길 잘 한 것 같다. 아직은 너무 힘들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