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이사를 가게 되었다
더블린에서 어학연수를 끝내고 나서부터 런던에서 1년 동안 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근 2년 동안의 해외 생활 중에 내가 사 입은 옷은 후드티 하나와 점퍼가 전부다. 옷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영국에서 지내다보니 한글로 크게 학교 이름이 적혀 있어도 아무도 몰라봐서 너무 편하게 입었다. 내가 학교 과잠을 입기에는 나이가 좀 있어서 가끔 한인을 마주치면 민망한 순간도 있기는 했지만, 학교가 부끄럽다기 보다는 굳이 영국에서 한국의 과잠을 입고 다니는 게 조금 민망했다. 그런데 사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런던에서 딱 1년 채운 시점에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수하물 제한이 한 명당 20kg이라 필요 없는 물건들을 조금씩 정리하기로 했다. 사실, 돕바는 이거 말고도 한국에 몇 벌 더 있어서(졸업하면서 동기 몇 명이 준 것) 주머니가 아예 떨어지고 세탁을 해도 냄새가 좀체 빠지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롱패딩이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 때문에 캐리어 공간을 너무 잡아먹어서 과감하게 버렸다.
런던 겨울 날씨
분명히 내가 어렸을 적에 교과서나 책에서 읽은 바로는 1년 내내 온도가 균일하고, 겨울과 여름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겨울에 두꺼운 외투가 필요없는 나라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개뿔
1년 살면서 느낀 거지만 영국 날씨가 1년 내내 비슷하다는 건 진짜 희대의 개소리거나 몇 십 년 전까지는 그랬는데 지구온난화가 영국 날씨를 망가뜨린 게 틀림 없다. 작년 여름에 런던에 처음 거주하면서 40도를 돌파해서 외출을 자제하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댔고, 겨울에는 외투를 입어도 너무 추워서 밖에 잘 안 나갔다. 남자친구가 집에만 있는 걸 싫어해서 마지못해 끌려나간 적도 많았지만,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공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영국의 추위는 온도 자체가 낮아서 오는 게 아니라 습해서 올 때가 많은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가 이사 가기로 한 벨파스트는 더블린과 날씨가 비슷하다고 들었다. 더블린에서 7개월 정도 지냈을 때 롱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어서 굳이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번의 대학 생활
그리고 또 슬픈 사실이지만, 문창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을, 그것도 해외에서 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걸 뛰어넘어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공을 포기한다면 일할 곳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널려 있기도 하다. 내 경우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비자지원(스폰서쉽) 이야기를 들었지만 공부하고 싶은 게 있어 거절했다.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런던에서 유학생활없이 정착할 거였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남자친구가 아이리쉬기는 해도 우리는 벨파스트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더블린에서는 벗어나고 싶어하는 남자친구의 마음과, 그래도 완전 시골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하는 나, 런던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우리의 마음이 모여서 벨파스트에 정착하기로 합의를 봤다.
대학교를 정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무슨 한국으로 귀국할 것도 아니고, 최상위권 대학교가 목표인 사람도 아닌데 그냥 동네에 있는 퀸즈 대학교를 가자 싶었다. 엑시터, 브리스톨 같은 곳도 눈에 들어왔는데 생각해보면 생각해볼 수록 피곤해지기만 하고 답이 나오질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나이가 많다. 더 공부하고 싶지만 무슨 파운데이션 같은 걸 끼고 4년이나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 대학교 알아볼 때도 1학년 다이렉트 입학과 IYO로만 알아봤다. 2학년 엔트리, 탑업과정까지도 다 찾아봤지만, 문예창작과에서 소설과 시를 써왔던 사람이 갑자기 전공을 바꿔서 공부하겠다고 하면 허가를 안 내주겠지 헤헤....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최상위권 대학교 가는 거 아닌 유학은 도피성 유학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 거면 그냥 그 지역에 있는 대학교 나와서, 그 지역에서 그 학위로 취업하고 자리 잡으면 뭐든 좋은 거 아닐까?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해도, 돈 많고 다섯 살 정도만 더 어렸으면 나 같아도 파운데이션 도전했을 것 같긴 하다. 내 선택이 후회스럽지 않도록 꼭 빅4 회계법인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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